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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QT/빌레몬서

빌레몬서 1장 8절~25절 (나의 오네시모는 누구입니까?)

by Updream 2024. 5. 1.

빌레몬서 1장 8절에서 25절 말씀을 통해 "나의 오네시모는 누구입니까?"라는 제목으로 주신 은혜 나눕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평강이 날마다 함께 하시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빌레몬서 1장 8절~25절
빌레몬서 1장 8절~25절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

빌레몬서는 교회 공동체를 수신자로 하나, 특별히 빌레몬이라는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왜 바울은 빌레몬에게 편지를 쓰게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오네시모라는 인물 때문이었습니다.

빌레몬서 1:10 /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오네시모는 ‘유익한자’라 뜻을 가지고 있는 빌레몬 가정의 종이 었습니다. 히지만 오네시모는 그의 이름과는 정반대로 살았습니다. 주인이었던 빌레몬의 집에서 물건을 훔쳐 달아나 주인에게 해를 끼친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빌레몬은 바울에게서 아주 놀라운 소식을 하나 듣게 됩니다. 그것은 바울이 그 오네시모에 대하여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성도나, 교회 공동체를 표현할 때 ‘형제, 혹은 동역자’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특히 몇몇에 대해서는 ‘아들’이라고 불러 표현했습니다.

 

아들이라고 표현한 사람 중에 디모데가 있고, (딤후 1장 2절), 디도가 있었습니다. (딛 1:4) 그 한 명이 더 등장하는데, 그 사람이 바로 오네시모입니다. (빌레몬서 1장 10절)

 

또한 바울은 10절에서 오네시모를 갇힌 자 중에 낳은 아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낳다인 ‘에겐네사’는 새로운 존재로 태어남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오네시모는 도중 중에 바울을 만나 예수님을 복음을 영접하고,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죄를 짓고 해를 끼친 자에서, 이제는 복음으로 변화되어 유익한 자가 되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나의 삶의 일부가 변화하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은 나의 삶의 전부를 변화시킵니다. 그래서 복음은 ‘리모델링’이 아니라 ‘리 크리에이션’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복음에 대하여 이렇게 증언합니다.

 

고린도후서 5:17 /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러한 복음의 능력을 날마다 경험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형제로 줄 지라

그런데 바울은 이렇게 변화된 오네시모의 소식을 전하면서 교회 공동체를 향해, 특히 빌레몬을 향해, 2가지 도전합니다.

 

첫 번째는 그를 용서하고 받아들일 것을 권면합니다. 죄를 짓고 나에게 해를 끼친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다음이 더 문제입니다. 두 번째 권면은 용서받는 차원을 넘어서 이제 그를 사랑받는 형제로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빌레몬서 1:16 /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사실 용서도 어려운 일이지요. 그런데 바울은 그를 더 이상 종과 같이 대하지 말고 이제는 그를 주안에서 사랑받는 형제로 대하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빌레몬서는 ‘빌레몬’이라는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그러나 사실 모든 교회들에게 보내는 편지이기도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빌레몬에게 전한 말씀을 통해 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가르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어떤 곳입니까? 용서의 공동체입니다.

 

교회가 용서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먼저 용서의 본을 보이셨고, 서로를 용서하고 용납하라고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바울은 에베소서 말씀을 통해 교회들에게 이렇게 권면하였습니다.

에베소서 4:32 /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나에게 해를 끼친 자가 있습니까? 우리는 그 사람이 주 안에서 변화되기를 소망하며 용서하고 용납해야 합니다.

 

또 교회는 어떤 곳입니까? 형제요 자매 된 가족 공동체입니다.

 

바울은 지금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용납할 것을 넘어서서 그를 형제로 받아들일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형제는 단순한 호칭이 아닙니다. 예수 안에서 한 가족이 되었음을 인정하는 고백입니다.

 

러시아의 대문호인 톨스토이가 한 번은 거리를 걸어가다가 한 걸인의 곁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톨스토이는 그에게 적선하기 위해 주머니를 뒤졌지만 마침 주머니는 비어 있었습니다. 톨스토이는 그 사람에게로 가서 “형제여, 미안하지만, 내게는 당신께 줄 것이 없구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걸인이 말했습니다. 당신은 내게 돈보다 더 좋은 것을 주었소. 당신은 나를 형제라 불렀습니다.

 

군인교회에 첫 신앙 생활하기를 주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초급간부나 계급이 낮은 사람들입니다. 왜 이들이 군인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기를 주저할까요? 먼저 믿은 사람들이 부대에서의 계급을 교회 안에서 그대로 가져와 생활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도 여전히 내 아래에 있는 사람, 나보다 계급이 낮은 사람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들에 대하여 오늘 하나님께서는 빌레몬서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복음 안에서 서로를 사랑받는 형제요 자매로 대하라는 것입니다.

 

이후 오네시모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는 복음 안에서 그의 이름과 같이 유익한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뜻이고 이것이 복음이 우리 가운데 찾아온 이유입니다. 

 

우리의 오네시모는 누구입니까? 아직까지 내 마음에 용서가 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주님은 용서하라 하십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여전히 계급으로 사람을 바라보고 있다면, 주님 안에 사랑받는 형제자매로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교회가 되어 하나님의 귀한 나라가 오늘도 우리 가운데 세워지길 간절히 소망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