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3장 12절~18절 말씀을 통해 "주의 영이 계신 곳에"라는 제목으로 주신 은혜 나눕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평강이 날마다 함께 하시길 기도하며 소망합니다.
정죄의 직분과 의의 직분
바울은 3장을 시작하면서 추천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당시 고린도교회 안에는 바울의 사도성을 부정하고 바울이 사역을 반대하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의 사도의 권위를 입증할 수 있는 어떠한 추천서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종이로 쓴 추천서가 아니라 여러분들이 나의 추천서이다. 여러분들이 나를 신앙과 믿음과 사역의 권위를 증명한다”라고 밝혔습니다. (고후 3:2)
이는 그만큼 바울의 목회가 진실하다는 것을 드러내 줍니다. “나는 거짓하거나 또한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하지 않고 오로지 주의 복음을 위해서 사역합니다”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제 교회 내에 있었던 또 다른 문제 즉 율법주의 신앙에 대한 잘못된 모습을 경계하며, 우리의 신앙의 근거는 오직 주님께 있음을 고백합니다.
고린도후서 3:12 / 우리가 이 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12절에서 이 같은 소망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바울은 앞절에서 율법 신앙과 복음신앙을 비교하면서 9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3:9 /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여기서 정죄의 직분이란 율법을 준수하고 율법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의의 직분이란 예수 그리스도 복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말합니다. 율법을 준수하고 율법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분명 유익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 복음 안에서. 복음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더욱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신앙의 울타리를 제공해서 우리가 잘못된 길로 나아가지 않도록 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은 살리는 기능이 없습니다. 율법을 어기면 정죄받을 뿐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다릅니다. 복음은 우리로 잘못된 길로 나아가지 않도록 붙잡을 뿐만 아니라 혹여 우리가 잘못된 길로 나아갈지라도 다시 우리를 일으켜 세우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로마서 3장 12절에서 말하는 이 같은 소망은 바로 복음이 담고 있는 이 기막힌 은혜를 말합니다.
예수 안에 진리가 있고, 예수 안에 은혜가 있고, 예수 안에 사랑이 있다는 것입니다.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리고 이러한 예수 안에서의 진리와 은혜와 사랑을 깊이 깨달은 바울은 담대히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3:13 /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
출 34:29-35에 보면 모세가 시내산에서 증거판을 들고 내려오는 장면에서 자기 얼굴에 광채가 남으로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렇게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이유는 모세의 광채를 보고 백성들이 두려워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사건을 조금 다르게 해석합니다. 모세가 수건을 쓴 것은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썼다는 것입니다.
얼굴의 광채는 본질이 아닙니다. 있다가 없어집니다. 정말 바라보아야 할 것은 말씀을 주신 하나님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당시 성도들이 주목해서 보아야 할 것은 율법이 아니라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율법은 본질이 아니요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복음이 아니라 율법을 바라보며 사는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고린도후서 3:14 /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고린도후서 3:15 /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히브리서 말씀을 보면 율법은 장차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다(히브리서 10:1)라고 말씀합니다.
장차 좋은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그림자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실체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세의 수건만 바라보며 진짜 중요한 실체를 바라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율법주의 안에 갇혀서 복음을 만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이에 바울은 이렇게 율법주의 안에 갇혀 신앙생활을 교회들을 향하여 이렇게 외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3:16 /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고린도후서 3:17 /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예수님 안에 진짜 복음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참된 진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 안에 자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율법을 철저히 준수하면서 살아가려는 선한 의도를 갖고 살아갔지만 정작 그들 안에는 기쁨이 없었고, 감사가 없었고, 자유가 없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진짜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참된 기쁨. 참된 소망 참된 구원은 예수 안에 있습니다
참된 복음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수건을 벗어 버리고 복음의 실체 되시는 예수님께 나와 예수님 안에서 참된 생명과 은혜와 평강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기도하며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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