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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QT/사도행전

말씀, 큐티, 묵상 - 사도행전 21장 27절~40절 (주를 위해 받는 고난)

by Updream 2023. 9. 12.

말씀, 큐티, 묵상 오늘은 사도행전 21장 27절에서 40절 말씀을 통해 "주를 위해 받는 고난"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나눕니다. 주신 말씀 안에 은혜와 위로가 있길 기도합니다.

사도행전 21장 27절~40절 - 주를 위해 받는 고난 - 포스팅 썸네일
사도행전 21장 27절~40절

정결예식이 끝난 이후에 기다리고 있는 고난

바울은 예루살렘에 도착하여서 지난 4차 전도사역 가운데 하나님께서 부어 주셨던 은혜의 이야기들을 들려주었습니다. 그 간증에는 전도사역에 가운데 행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이야기들로 가득 찼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바울을 오해하는 많은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율법을 배신하고 유대의 전통을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오해를 풀기 위하여, 교회 공동체는 바울로 하여금 4명의 서원한 사람들과 함께 결례예식을 치르고 그 비용을 감당할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바울은 얼마든지 그 제안을 거부할 수 있었으나, 교회의 요청을 수용하고, 7주일간의 결례의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결례의 시간을 보낸 이후에 일어난 사건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1:27 / 그 이레가 거의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

 

바울이 결례예식에 동참한다면, 바울에 대한 오해가 풀릴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결례 예식이 끝난 이후에 바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바울을 붙들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은 사람들을 선동하여, 바울을 고발합니다.

사도행전 21:28 /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비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 하니
사도행전 21:29 / 이는 그들이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시내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그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함이러라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은 2가지 죄목으로 바울을 고소합니다.

첫째는, 율법을 비방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방인을 성전에 데리고 들어와 성전을 더럽혔다는 것입니다.

성전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만 들어갈 수 있는 내부 성전과, 이방인들이 머물러 있던 이방인의 뜰입니다.

내부 성전과 이방인의 뜰을 구분하는 성전 담은 150cm 높이의 낮은 담장으로 되어 있는데, 이 성전담의 벽에는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로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 이 신성한 성전에 들어가면 죗값으로 죽는다 ‘라는 경고가 곳곳에 새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율법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삶의 근간이요, 성전은 마음의 고향 같은 곳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을 성전에 들어오게 하였다고 하니, 예루살렘 안에 큰 소동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성난 사람들이 바울을 붙잡아 끌고 갑니다. 그리고 바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실제로, 천부장이 보낸 군사들이 아니었다면, 바울은 이 자리에서 매 맞아 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바울은 천부장이 보낸 군사들로 인하여 간신히 소동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천부장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천부장은 바울에게 이전에 소요를 일으켰던 애굽인 인지를 묻습니다. (38절)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저술에 따르면, AD 54년경 애굽 출신의 한 예언가가 폭도 3만 명을 모아 감란산까지 진격했었던 사건이 나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애굽인이 아니라, 유대인이며, 길리기아의 수도 다소의 시민임을 밝힙니다. 그리고 바울은 천부장에게 군중에게 연설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요청하는 것으로 오늘 본문이 끝납니다.

 

주를 위해 받는 고난

오늘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2가지 모습을 보게 됩니다.

첫째, 오늘 말씀에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당하는 고난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1장 이전에 많은 제자들이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을 만류하였고,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간다면, 고난 받을 것이라는 예언까지 들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왜 예루살렘으로 온 것입니까? 

두 번째, 지금 바울은 폭도들의 공격으로 거의 죽을 뻔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그 자리를 빠져나오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심신이 몹시 지친 상태였지만 천부장에게 청하여 군중들 앞에 서게 됩니다. 왜 바울은 그들 앞에 서기를 선택한 것일까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전하려는 ‘주의 복음’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미 사도행전 20:24에서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고백했던 인물입니다.

온전히 복음을 이해하지 못한 그들에게, 아직도 복음이 아니라, 율법에 매여 사는 유대인들에게 왜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는지, 그래서 복음이란 무엇인지를 알려 주기 위하여 바울은 고난을 선택한 것입니다.

고난은 악을 행하여 받는 경우도 있지만 의를 위하여 받는 고난도 있습니다. (벧전 3장 17절)

베드로전서 3:14 /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성경은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이다” 고백하며 믿음의 사람들을 격려합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몸에 새기셨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주를 믿는 우리도 주의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기뻐해야 하는 줄 믿습니다.

주를 위해 받는 고난을 오늘 우리의 삶에 새기고, 주님 앞에 진실한 자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