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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QT/사도행전

말씀, 큐티, 묵상 - 사도행전 26장 24절~32절 (예수에 미친 사람)

by Updream 2023. 10. 4.

말씀, 큐티, 묵상 사도행전 26장 24절~32절 말씀을 통해 "예수에 미친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나눕니다.

주시는 말씀을 통해 도전과 위로를 받고,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도행전 26장 24절~32절
사도행전 26장 24절~32절

 

바울에 모습에 충격을 받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미쳤다는 소리를 들은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왜 이런 소리를 들은 것입니까? 그는 도대체 무엇에 미친 것일까요?

바울은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변호할 수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습니다.(행 26:2) 바울이 다행으로 여긴 이유는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자신의 무죄를 입증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아그립바 왕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자신이 만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소개하기 시작합니다. 또한 그는 예수께서 자신에게 주신 사명도 이야기합니다.

본래 자신도 율법에 충실한 유대인이었지만, 이렇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된 이유는 바로 자신이 만난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에 의하면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사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으며, 죽으신 예수님은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에 바울은 과거 자신과 같은 영적 소경이 되지 말고 복음의 눈을 뜨고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라고 촉구합니다.

이러한 바울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먼저 베스도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26:24 /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바울이 들은 소리 - 그는 미쳤다

베스도는 전형적인 로마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온 인물입니다. 그래서 지금 유대 총독의 위치에 오른 사람입니다. 이런 베스도의 입장에서 바울은 완전히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무죄를 밝히고 사건을 해결하려는 것이 정상적인 일인데, 지금 바울은 어떻게 해서든지 복음을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 때문에 이렇게 고소를 당했는데, 어찌 여전히 예수를 말하는가?” 그래서 베스도는 많은 학문이 그를 미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바울은 베스도의 말처럼 많은 학문이 미치게 한 것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26:25 / 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사도행전 26:26 /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니이다

 

바울은 자신이 미친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그리고 다시 아그립바 왕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무엇보다도 26절을 보면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한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바울이 담대히 전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29절에서는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한다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상식밖의 일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도, 바울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잘 믿는다는 것은

보통 미쳤다고 하면 상식 밖의 일을 하는 사람, 또는 보통 사람과 다른 말과 행동을 보이는 사람을 말합니다. 때문에 미쳤다는 말은 사실 긍정적인 말이기보다는 부정적인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듣기가 거북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미쳤다고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 바울 말고 더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이한 일들을 보며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막 3:21)

사람들이 보기에 예수님은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신 예수님의 모습은, 세상 사람들이 눈으로 봤을 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의인이 아니라 죄인과 함께 하시며, 왕좌를 포기하고 십자가를 선택하며, 당시 종교 지도자들과 맞서 가장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셨던 예수님의 모습은 정말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보면 그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믿어도 너무 요란스럽게 믿지 말라! 믿어도 적당히 믿어라!! 믿어도 너무 빠지지 말라 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그래서 점잖게 예수를 믿으려고 합니다. 남들 보기에 이상하지 않게 보이려 애를 씁니다.

그런데 정말 예수 잘 믿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이상하게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내 안에 계시면 우리는 세상과 다르게 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삶의 목적도 다르고 삶의 모습도 달라, 세상이 볼 때 믿음의 사람들은 이상한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1장 1절에서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로 자신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잘 믿었으면 좋겠습니다. 적당히 믿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믿되 열정적으로 온 힘을 다하여,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바울이 보여준 신앙의 모습을 기억하면서, 우리 안에도 바울과 같은 예수 복음의 열정으로 충만하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