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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QT/고린도전서

매일큐티 - 고린도전서 14장 1절~12절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은사)

by Updream 2024. 7. 16.

매일큐티 - 고린도전서 14장 1절에서 12절 말씀을 통해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은사"라는 제목으로 주신 은혜에 나눕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평강이 날마다 함께 하시길 기도드립니다.

 

매일큐티 - 고린도전서 14장 1절~12절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은사)
매일큐티 - 고린도전서 14장 1절~12절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은사)

 

 

은사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

은사를 확인할 수 있는 ‘네 박자’라는 글에 소개된 내용입니다. 과연 이것이 은사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분별할 수 있냐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은사가 되기 위한 4가지 조건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자신에게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형제에게는 덕을 세워야 합니다. 셋째, 공동체에 유익을 주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은사란 바로 이렇게 네 박자가 맞아야 한다고 글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참 공감이 되었습니다.

 

어느 교회의 집사님 이야기입니다. 이 집사님은 사람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여 대접하기를 그렇게 좋아했습니다. 주로 교인들이 오겠지만, 교인이 아닌 사람들도 방문했습니다.

 

사람들이 오면 화려한 반찬은 아니지만, 반찬 몇 가지를 내놓고 서로 식사 교제를 나누는데, 초대한 사람도 기뻐하고, 초대받은 사람도 기뻐하, 그 집사님 집에 사람들이 자주 모인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집사님의 은사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은사는 이렇게 자신이 기뻐하여합니다. 그리고 더불어 이웃도 기쁘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에게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남에게 해를 끼친다면 그것은 ‘은사’가 아닙니다.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라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다시 한번 은사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는데 특별히 방언과 예언을 비교하면 주신 은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한지에 대하여 권면합니다.

고린도전서 14:1 /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이 구절에는 3가지 권면이 담겨 있습니다. 먼저는 사랑을 추구하고 두 번째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며, 세 번째 특별히 예언을 하라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사랑이 모든 은사에 모토가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울은 전장을 통해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님을 밝혔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사랑을 품기를 힘써야 합니다. 

 

두 번째 신령한 것들을 사모해야 합니다. 여기서 신령한 것들이란 무엇입니까? 바로 은사입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은사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분들도 계십니다. 심지어 은사 무용론을 주장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은사가 없어도 되는 것이라면 왜 하나님은 교회 공동체에게 은사를 허락하신 걸까요? 또 오늘날 은사가 폐하여진 것이라면 왜 성경에 기록하도록 하셨겠습니까?

 

그러므로 은사는 오늘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임을 알고 은사를 사모해야 합니다.

 

세 번째, 바울은 특별히 예언을 하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예언이 다른 은사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신 은사로 덕을 세워야 함을 강조하는 구절입니다.

 

왜 예언을 하라고 하였을까요? 그 이유가 2절에 나옵니다.

고린도전서 14:2 /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1절의 ‘예언의 은사’와 2절의 ‘방언의 은사’는 공통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 공통덤은 바로 언어로 하는 은사라는 것입니다. 예언도 말로 하고 방언도 말로 하는 은사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방언은 다른 이들이 알아들을 수 없고 예언은 모든 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 고린도 교인들은 방언을 최고의 은사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방언의 은사 받기를 소망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이들이 이 방언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방언의 한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고린도전서 14:7 / 혹 피리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나타내지 아니하면 피리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리오
고린도전서 14:8 / 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리오
고린도전서 14:9 /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써 알아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악기가 소리를 내지 못하면 이것이 무슨 악기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또 전쟁을 알리는 나팔이 명확한 소리를 내지 못하면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누구도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만을 모두가 추구한다면 공동체에는 큰 유익이 없습니다.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은사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권면합니다.

고린도전서 14:12 / 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바울이 본장을 통해 말하는 것은 예언이 더 훌륭한 은사인지, 혹은 방언이 덜 중요한 은사인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디에 강조점이 있습니까? 주신 은사는 교회의 덕을 세우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

 

늘 우리는 말씀을 통해, 은사를 사모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며 은사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공동체를 위해 사용하지 않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보게 됩니다. 또한 은사가 자기만족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은사는 교회 공동체를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오늘 말씀과 같이 신령한 은혜를 구하고, 주신 은사를 통해 교회를 섬겨서 교회 공동체 안에 기쁨과 은혜로 풍성히 넘치길 기도하며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