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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QT/고린도전서

매일 큐티 - 고린도전서 14장 13절~25절 (방언을 어떻게 사용할까?)

by Updream 2024. 7. 17.

매일 큐티 - 고린도전서 14장 13절에서 25절 말씀을 통해 "방언을 어떻게 사용할까"라는 제목으로 주신 은혜 함께 나눕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평강이 날마다 함께 하시길 기도드립니다.

 

매일 큐티 - 고린도전서 14장 13절~25절 - 방언을 어떻게 사용할까?
매일 큐티 - 고린도전서 14장 13절~25절 (방언을 어떻게 사용할까?)

 

방언을 어떻게 사용할까?

오늘 본문에 계속되는 이슈는 방언 은사에 대한 말씀입니다. 말씀을 읽다 보면 방언을 하지 말아야 하나? 방언은 나쁜 것인가 하는 오해를 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방언이 나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방언도 하나의 은사인데, 성령님께서 나쁜 것을 주실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본문이 말씀하고 있는 것은 잘못된 방언의 사용의 예입니다. 다시 말해 방언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방언을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한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한국교회 나타나는 방언에 대한 올바르지 못한 극단적인 두 가지 태도가 있습니다. 하나는 방언은 초대교회에 끝난 것으로 오늘날 방언 은사는 사라졌다는 입장입니다.

 

이렇게 주장하시는 분들 중에는 심지어 방언을 귀신 방언이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절대 교회 내에서 방언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다른 극단적인 태도는, "방언을 해야만 성령세례를 받은 것이다. 심지어 구원을 받은 것이다"라고 말하는 입장입니다. 즉 구원을 받은 사람은 외적인 표식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방언이라는 것입니다

 

이 극단에 치우는 분들은, 세례를 받듯이, 반드시 방언을 받도록 강요합니다.

 

저는 이 두 가지 극단적인 태도가 매우 성경적이지 못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초대교회에 역사하신 성령님은 오늘의 성령님과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에도 방언의 은사는 분명히 일어날 수 있습니다.

 

반면 그렇다고 방언을 해야 성령세례를 받은 것 아닙니다. 방언은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주시는 은사의 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방언의 은사에 대하여 양극단에 빠지는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바울이 말하는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주신 방언을 옳게 사용하여 교회의 질서와 덕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당시 고린도 교회는 시도 때도 없이 방언을 사용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4:13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고린도전서 14:14 /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고린도전서 14:15 /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고린도전서 14:16 /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오

 

방언의 은사는 기도를 더욱 힘 있게 하게 하시는 귀한 은사입니다. 때문에 홀로 기도할 때에는 얼마든지 방언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표기도 할 때에는 방언으로 기도 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회중들이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홀로 기도하다가, 영감이 흘러나와 방언으로 찬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경험해 본 분들은 아십니다. 기도 중 그 황홀한 은혜 속에 나도 모르는 방언으로 찬양의 고백을 드릴 때 얼마나 은혜가 넘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회중 앞에선 자는 홀로 방언으로 찬양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또한 설교를 하다가 갑자기 방언으로 설교한다면, 회중은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방언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고린도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초신자를 배려하지 않고 그저 방언을 말하며 자신의 신령함을 드러내기가 급급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무분별하게 방언을 사용하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 대하여 이렇게 권면합니다.

고린도전서 14:19 /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19절의 말씀은 방언이 필요 없다거나 방언을 하찮게 여기는 구절이 아닙니다. 방언이 무분별하게 사용되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공동체를 배려하는 방언 말하기

이러한 의도가 이어지는 구절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고전 14장 21절 /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고전 14장 22절 /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고전 14장 23절 /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고전 14장 24절 /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고전 14장 25절 / 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

 

바울이 왜 방언보다 예언하기를 힘쓰라고 하는 것입니까?

 

예언이 방언보다 더 좋은 은사여서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방언보다 예언하기를 힘쓰라는 것은 당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방언 은사에 치중해 있었으며, 무분별하게 방언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공동체를 배려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을 위해 방언 말하기를 힘썼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하나님 앞에 옳지 못한 태도임을 바울은 말합니다. 

 

아무리 선한 것이라고 지혜롭게 사용하지 못하면 은혜가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방언 역시 때에 맞게 지혜롭게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사대로, 주님을 섬기되 주신 이의 의도와 목적에 맞게 은사를 아름답게 사용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기도하며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