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큐티 고린도전서 4장 1절에서 5절 말씀을 통해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는 제목으로 주신 은혜 함께 나눕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복된 하루 보내시길 기도합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일꾼입니다.
사도바울은 3장에서,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고백 속에는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가 서로 헐뜯고, 비난하고, 분쟁해서는 안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세상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로 살아갈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세상 지혜란 세상의 모양, 세상의 방식을 말합니다. 교회 안에서 당파를 만들고 서로 분쟁하고 분열하는 모습을 염두하고 한 말입니다.
이를 통해 교회는 세상의 모양 세상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주장하시는 거룩한 공동체여야 함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5장에서, 바울은 교회가 가져야 할 중요한 자세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그 첫 번째는, 성도는 그리스도의 일꾼이라는 사실입니다.
고린도전서 4:1 /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바울 당시에 교회에 영향력을 끼치는 몇몇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베드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울도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아볼로라는 인물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이렇게 당시 영향력이 있는 몇몇 사람을 추종하며, 서로 당을 짓고 분쟁을 일으키셨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교회 공동체를 향해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그것은 베드로나, 바울이나 게바나 모두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라는 것입니다.
일꾼은(υπηρετης: 휘페레타스)는 ~아래에 란 뜻의 '휘포'와 노를 젓다 '에렛소'의 합성어로 문자 문자적으로는 배 밑에서 노를 젓는 노예를 말합니다.
당시 로마 시대에 이 일은 중죄인이나 가장 비천한 노예가 감당했던 일로서, 한 번 노 젓는 노 예가 되면 죽을 때까지 그 일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단어는 이후에 충성을 다하는 일꾼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당시 노예는 어두운 배 밑창에서 노를 저을 뿐, 주목받을 일도 없고 나설 일도 없었습니다. 지휘에 맞추어 그저 노를 저을 뿐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렇게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교회를 일꾼이라고 고백한 이유는 어디에 있겠습니까?
성도의 분명한 정체성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분명 공동체의 중요한 일을 감당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그들도 다 주님의 일꾼입니다.
일꾼은 주목받을 이유도, 드러날 필요도 없습니다. 오직 주님께 대한 충성만 필요할 뿐입니다. (4:2)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입니다. 일꾼인 우리가 믿고 바라보아야 할 분은 사람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기억하길 원합니다.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바울은 교회를 향하여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아야 할 것을 권면합니다.
고린도전서 4:3 /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당시 고린도 교회는 당을 나누고 서로를 판단하였습니다. 자신들이 가진 지식을 바탕으로 타인을 비난하고 정죄했을 것입니다.
비난과 정죄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래야 자신이 돋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자신들의 옳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다른 이들에 의해서 판단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3절에서 바울은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고백합니다.
작은 일이라는 것은 여러분들의 판단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사람의 판단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세상의 판사도 잘못된 판정을 내릴 때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판단은 절대적 기준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를 판단하실 수 있는 분은 누구실까요? 오직 주님뿐이십니다.
고린도전서 4:4 /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바울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나에게서 자책할 아무것도 찾지 못합니다” 그만큼 바울은 스스로를 사람들에게 크게 흠 잡힐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어서 말합니다. “그러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는 못합니다.”
자책할 것을 깨닫지 못하면 반대로 의롭다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는데 왜 의롭다고는 말 못 하는 것입니까?
자신은 자각하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의 눈으로는 자신의 죄가 얼마든지 발견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집니다.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사람은 실수합니다. 사람의 판단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실수가 없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감찰하시며 모든 판단에 정확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재판장이십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바울이 고린도교회 공동체를 향해서 던지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남을 판단하는 돌을 내려놓고, 사랑으로 하나가 되라는 것입니다. 모여서 험담하고, 헐뜯고 비난하지 말고 주 안에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율법을 주신 이유는 사랑하라고 주신 것인데, 사람들은 율법을 가지고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였습니다.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주시는 이유는 이 말씀을 가지고 누구를 판단하고 정죄하라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사랑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내 안에 누구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마음이 있다면 오늘 그 마음을 내려놓고 우리의 마음속에 주님의 마음과 사랑으로 가득 채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요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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