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약 QT/사도행전

매일 큐티 - 사도행전 9장 32절~ 43절 (룻다, 사론, 욥바 사람들이 복음을 믿다)

by Updream 2023. 7. 12.

931절까지는 이야기의 중심이 사울이었는데, 32절부터는 베드로로 전환이 됩니다. 사울이 회심하여 복음을 전파하는 동안, 다른 사도들 역시 복음 사역을 위하여 여러 지역에 흩어져 복음을 전파하고 있었습니다. (8:4)

오늘 말씀은 특히 베드로를 중심으로 복음 사역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보여 주십니다.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다

사도행전 9:32 / 그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다니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베드로는 예루살렘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사방으로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는 것은 사실 오늘 본문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1:8) 

복음이 예루살렘 즉 소수의 종교지도자들이나, 유대 즉 유대인들만의 것이 아니라, 사마리아와 땅끝 즉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이었습니다.  

 

룻다에 복음이 전해지다.

베드로가 두루 다니다가 도착한 곳은 룻다라는 곳이었습니다. 룻다는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약 40KM 떨어진 작은 마을입니다. 그리고 룻다는 욥바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과 애굽에서 수리아로 가는 대로가 만나는 지점이어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혼재하는 곳이었습니다. 거기서 베드로는 8년 된 중풍병자 애니아를 만나게 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치유하는 이적을 행합니다.

그리고 그 후에 된 일을 성경은 소개합니다.

사도행전 9:35 /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

룻다와 더불어 사론이라는 동네 이름이 나옵니다. 사론은 룻다 서편의 해안가를 따라 남북으로 길게 뻗은 평야지역을 가리킵니다. 이 지역 역시 지중해 해안 지역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이 혼재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룻다에서 애니아가 고침 받은 사건으로 이곳에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영접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욥바에 복음이 전해지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또 다른 기적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9:36 /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사도행전 9:37 / 그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니라

욥바에는 '다비다'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선행과 구제하는 일로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만 병들어 죽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베드로가 인근 마을 룻다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베드로를 청하여 이곳에 오게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베드로에게 다비다라는 여인이 생전에 행한 여러 선행들, 특히 가난한 과부들을 위해 한 일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40절입니다.

사도행전 9:40 /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베드로는 무릎을 꿇고 기도여 시체를 향하여 외칩니다. “다비다야 일어나라..”  그리고 성경은 그 이후에 놀라운 일을 증거 합니다. 다비다가 다시 살게 된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 일은 욥바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42)

그리고 오늘 말씀은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는 동안 '무두장이' 집에서 머물게 되었다고 밝힙니다. 무두장이는 가죽을 손질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하는데, 가죽을 다루려면 동물의 사체나 피 등 부정한 것과 접촉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율법의 엄격한 해석에 따르면 무두장이는 부정한 직업이었습니다.

왜 오늘 성경의 저자는 룻다와 욥바에서 있었던 이적과, 베드로가 무두장이 집에 머문 일을 기록하고 있을까요?

사실 오늘 성경의 관심은 기적이 아닙니다. 베드로의 능력도 아닙니다. 차별과, 경계 그리고 편견의 벽이 무너지고 복음이 점점 더 확장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더욱 밝혀 드러내고 있습니다. 

룻다, 사론, 욥바 그리고 무두장이의 집은 사실 한 가지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편견이 있었고, 경계가 있었고, 차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전통 유대인들은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철저하게 구분하였습니다. 그리고 유대인과 이방인이라는 경계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복음이 전 세계로 더 이상 확장되지 못하게 가로막는 요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복음 앞에 모든 차별과 편견의 벽을 깨어 버리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확장되어야 함을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오늘날의 교회에도 차별이 있습니다. 경계가 있고, 편견이 있습니다. 우리의 룻다가 있고, 욥바가 있고, 무두장이의 집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차별과 경계와 편견은 교회 공동체가 부흥하는 것을 막는 큰 걸림돌입니다.  

오늘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차별과 편견의 벽을 깨어 버리고 복음으로 하나 되어 나아갈 것을 말씀해 주십니다. 그리고 차별과 편견의 벽이 허물어질 때 교회 공동체가 부흥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성령의 바람으로 우리의 룻다, 사론, 욥바에 차별과 편견의 벽이 허물어지고 오직 주의 사랑만이 주장하시는 크신 은혜가 우리의 삶에 더하여 주시길 기도하며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