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큐티, 묵상 히브리서 12장 1절에서 11절 말씀을 통해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는 제목으로 주신 은혜 나눕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평강이 늘 함께하실 기도 합니다.
인내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은 11장의 적용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11장에서 믿음으로 살았던 구약의 많은 인물들을 소개하고 그들이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서 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12장에서는 그렇다면, 이제 오늘날 주님을 믿는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12장을 통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믿어야 합니까? 첫 번째 인내를 말합니다.
히브리서 12:1 /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히브리서 기자는 신앙생활을 ‘경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단거리는 그렇지 않지만, 장거리 달리기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인내입니다.
3km를 달리는 어느 시점 숨이 가쁘기 시작하고 ‘잠시 쉴까, 멈출까’라는 생각이 수 없이 듭니다. 그러나, 그 고통의 시간을 인내하며 끝까지 달릴 때에 결승점을 통과할 수 있고, 좋은 기록이 나올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장거리 경주와 같습니다.
사람 때문에 실망이 되고 여러 가지 장애를 만나며 시험과 유혹의 방해물 때문에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인내입니다.
그 시험의 시간을 인내하며 참고 견디어 낼 때에 믿음의 결승선을 기쁨으로 통과하게 되는 것입니다.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에 필요한 것은 또 무엇일까요? 히브리서 기자는 '낙심하지 말 것'을 권면합니다.
히브리서 12:3 /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우리말 성경은 3절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여러분, 거역하는 죄인들을 참으신 분을 생각하십시오. 그리하여 지쳐 낙심하지 마십시오.”
5절 후반부도 보시면,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라고 권면합니다.
당시 성도들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왜 우리에게 이러한 고난과 핍박이 있는가? 왜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시지 않는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 히브리서 기자는 “징계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나타내는 증거이다”라고 밝힙니다.
히브리서 12:8 /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우리가 받는 연단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의 죄로 인해 받는 연단이 있고, 다른 하나는 우리를 강하게 하시기 위해 주시는 연단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모양이든, 분명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이를 연단하신다는 것입니다.
길거리에 지나가는 얼굴도 모르는 이를 훈계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자녀는 다름니다. 잘 하라고 격려하고 잘못하면 훈계도 하고 벌도 줍니다. 관여하지 않으면 내 자녀가 아닌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연단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나타내 주는 증거”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시험이 오고, 징계가 오고, 연단이 찾아올 때에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끝으로 히브리서 기자가 말씀하는 신앙생활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2 /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우리는 인내해야 하고, 또 낙심하지 말아야 함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신앙생활의 가장 최종적 목표는 바로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2절에서 예수님을 ‘믿음의 주’이시고, ‘온전하게 하시는 이’라고 소개합니다.
‘주’로 번역된 ‘아르케곤’의 원형 ‘아르케고스’(αρχηγος)는 ‘시작, 창시’를 의미하는 아르케(αρχη)와 이끌고 가다를 의미하는 아르코(ἄρχω)의 합성어로, '시작을 선도하는' 또는 '첫째 원인을 이끄는 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단어는 통치자, 인도자, 창시자라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그리고 '온전케 하시는 이'로 번역된 ‘텔레이오텐’의 원형 ‘텔레오테스’(τελεωτης)는 완전케 하는 자라는 의미뿐만이 아니라, '완성자'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2절을 단어의 뉘앙스를 살려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믿음의 창시자이시오,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봅시다.”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께서 믿음의 시작이시고 끝이 되신다"는 말입니다.
예수님 이외에 다른 어떤 것도 믿음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교회도, 목회자도, 어떤 교리도, 사상도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 말씀과 같이 우리의 믿음이 시작이 되시고 끝이 되시는 예수님만 바라보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복된 하루 보내시길 기도하며 소망합니다.
'신약 QT > 히브리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히브리서 12장 18절~29절 (시내산에서 시온산으로) (1) | 2023.11.23 |
---|---|
히브리서 12장 12절-17절 (거룩함을 추구하는 믿음의 경주자) (0) | 2023.11.21 |
히브리서 11장 32절-40절 (고난을 이기는 믿음) (1) | 2023.11.19 |
히브리서 11장 20절-31절 (홍해와 여리고를 넘어서는 믿음) (0) | 2023.11.16 |
히브리서 11장 8절~19절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과 사라) (0) | 2023.1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