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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QT/고린도후서

고린도후서 11장 16절~33절 (바울의 고난 목록)

by Updream 2024. 9. 19.

고린도후서 11장 16절에서 33절 말씀을 통해 "바울의 고난 목록"이라는 제목으로 주신 은혜 함께 나눕니다. 

 

 

고린도후서 11장 16절~33절 (바울의 고난 목록)
고린도후서 11장 16절~33절 (바울의 고난 목록)

 

 

 

바울의 자랑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앙을 갖게 되는 이유는 신앙을 갖게 되면 더 잘 되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으니 자녀가 잘 되었다더라 든 지, 더 행복하게 되었다더라 든 지, 신앙을 갖기 전보다는 더 잘 되리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대와 달리 사업이 막히고, 자녀가 잘 안 되고, 많은 고난을 받게 된다면 그래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예수를 믿으면 좋은 일만 생기는 것입니까? 예수를 믿으면 고난은 사라지는 것입니까? 하지만 오늘 말씀에서 바울은 그것이 아님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참된 신앙이란, 이러한 고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하나님을 붙잡는 것임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전장에서 자기를 자랑하는 것이 얼마나 미련한 일인지를 밝혔습니다. 그런데 11장을 시작하면서 바울은 자기 자랑을 시작합니다. 바울이 서신을 통해서 자기를 자랑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대적자들의 비방과 다르게 나 바울은 오직 복음을 위하여 살아왔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1절에서 15절까지에서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위하여 얼마나 헌신하였는지, 얼마나 노력하였는지를 밝혔습니다.

 

 

바울의 고난 목록

그리고 16절부터는 그가 복음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난을 당하였는지를 밝힙니다.

고린도후서 11:23 /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바울을 대적하는 자들은 스스로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자처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자신은 더욱 그리스도의 일꾼임을 밝힙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살았던 바울은 이제까지 자신이 사역을 감당하면서 당한 일들을 열거하기 시작합니다.

고린도후서 11:24 /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유대 사회에서는 40대 이상을 때리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정하였습니다. 그런데 40에서 하나를 감한 매를 맞았다는 것은 맞을 수 있는 최대한의 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처벌을 무려 다섯 번이나 당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고린도후서 11:25 /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태장은 로마 군대에서 사용하던 채찍이나 매를 의미합니다. 또한 바울은 돌로도 맞았는데, 돌로 처벌하는 것은 당시 사회에서 매우 중대한 범죄에 대한 극단적인 처벌 방법이었습니다. 바울이 당한 고난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사람들에게만 고난을 당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3번이나 파선을 당하고, 26절을 보면 강도와 동족과 이방인의 위험뿐만 아니라 강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또한 27절을 보면,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다고 고백합니다.

 

이를 통해 보건대, 바울은 어쩌다가, 가끔씩 이러한 고난을 당한 것이 아니라, 그의 삶 전반에 걸쳐서 이러한 고난당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주를 위해 받는 고난의 흔적

바울의 고난의 목록을 보건대, 과연 오늘날 바울만큼 고난을 당하는 자가 또 어디 있을까 싶습니다. 그만큼 바울은 사역을 감당하면서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이러한 바울의 고백을 통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도전을 받게 됩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의 흔적을 갖고 있는가?”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 믿어서 잘된 것을 자랑합니다. 이렇게 해서 세상적으로 복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바울의 일생을 보면 세상적으로 예수 믿어서 잘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더 안 좋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이렇게 자신의 고난의 흔적을 당당히 말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주를 위하여 받는 고난이 또한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자랑이 되기 때문입니다.

 

군인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생긴 상처를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영광의 상처라고 부릅니다. 위대한 일을 하다가 생긴 상처이기 때문입니다.

 

주를 위해 받는 고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를 위해 받는 고난을 받았다면 내가 주 앞에 헌신된 사람임을 잘 드러내 줍니다. 주를 위해 산다고 하면서 아무런 흔적도 아무런 고난도 없다면, 다른 말로 나는 주를 위해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것입니다.

골로새서 1:24 /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바울은 주의 복음을 위해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신의 육체에 채운다고 고백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의 흔적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의 흔적을 기뻐합니까? 그러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의 참 일꾼입니다.

 

오늘 말씀과 같이 그리스도의 참 일꾼이 되어, 주를 위해 받는 고난까지도 감사하며 기뻐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기도하며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