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6장 1절에서 13절 말씀을 통해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는 제목으로 주신 은혜 함께 나눕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사도바울의 계속된 권면에도 불구하고 바울을 대적하는 이들을 동조하고 바울의 복음에 의구심을 품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훼손하고 다른 복음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내가 무엇을 해야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이해하기 쉽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깨끗하게 살아야 합니다. 도덕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천국에 갑니다.”라는 말이 이해가 쉽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습니다”라는 말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내가 율법을 지키고 내가 무엇을 해야만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율법주의에 동조하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6장에서, 다시 한번 복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어떠한 어려움을 당했는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6:1 /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먼저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원문에는 ‘하나님’라는 단어가 없이 ‘함께 일하는 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구절을 볼 때에 ‘하나님 또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냄이 분명합니다.
이러한 문맥의 상황을 고려하여 한글 성경에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 기록하였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라고 밝히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먼저는 자신의 사도 직분에 대한 정당성을 말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또한 앞으로의 이야기가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이나 생각이 아님을 밝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그리고 이어서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헛되이(κενος)라는 말은 ‘공허한’ ‘텅 빈’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귀한 은혜를 주시지만 받는 사람에 따라서 그 은혜가 공허하거나 텅 빈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대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교회 내에는 복음이 아닌 율법주의를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율법주의가 무엇을 말합니까? 믿음으로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들은 철저하게 계명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계명을 지켜서 구원을 얻는다면 다른 행위주의나 도덕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우리가 무엇을 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곧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지금은 구원이 날이로다
그러면서 말을 이어갑니다.
고린도후서 6:2 /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린도후서 6장 2절의 말씀은 이사야 49장 8절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시 이사야를 통해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 생활이 종식될 것이란 의미로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당장에는 이루어지지 않지만 언젠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날이 되면 그들은 포로생활이 끝나고 자유를 찾게 될 것입니다. 그날과 그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날이면서 중요한 때입니다.
바울이 이 말씀을 인용하면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 은혜의 때다 구원의 날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생활을 끝내고 자유를 찾게 되었던 것 같이 신약의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죄와 사망의 속박에서 벗어나 하나님 안에서 자유하게 된 때가 지금이라는 것입니다.
어제가 광복절이었습니다. 1945년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기쁨의 날입니다. 이 날은 우리나라 역사에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고 앞으로도 계속 기억되어야 할 날입니다.
그런데 광복을 인정하지 않고 여전히 일제 치하에서 사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여전히 나는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요? 불쌍하고 매우 안타까울 것입니다.
바울의 심정도 이와 같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는데, 신약의 백성들이 여전히 율법을 붙들고 있습니다. 여전히 죄와 사망의 그늘 아래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에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여전히 율법에 매이고 자기 신앙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위하여 그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과 진리의 말씀을 가지고 이 복음을 전하기를 힘써 왔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이 시간이 은혜받을 만한 때요 또한 그 은혜를 전할 수 있는 때입니다. 이러한 은혜를 알고 주신 하루 속에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며 그 은혜를 힘써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기도하며 소망합니다.
'신약 QT > 고린도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린도후서 7장 2~7절 (낙심한자를 위로하시는 하나님) (0) | 2024.08.21 |
---|---|
고린도후서 6장 14절~7장 1절 (성도가 메어야 할 멍에) (0) | 2024.08.20 |
고린도후서 5장 11절~21절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0) | 2024.08.14 |
고린도후서 5장 1절~10절 (육신의 장막과 하늘의 집) (0) | 2024.08.13 |
고린도후서 4장 7절~18절 (영원함을 바라보는 신앙) (0) | 2024.08.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