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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QT/히브리서

말씀, 큐티, 묵상 - 히브리서 3장 1절~11절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by Updream 2023. 10. 18.

말씀, 큐티, 묵상, 히브리서 3장 1절~11절을 통해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제목을 받은 은혜 나눕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히브리서 3장 1절~11절
히브리서 3장 1절~11절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브리서 2장에서 “우리가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다”라고 권면한 히브리서 기자는 3장에서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깊이 생각하다’에 해당하는 κατανοήσατε(카타노에사테)는 ‘깨닫다, 이해하다, 통찰하다’를 뜻하는 νοεω(노에오)를 포함하고 있어서, 이를 다시 번역하면 ‘예수님을 보고 깨달으라’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알아야 할 사실은 2장 1절에서는 ‘우리’, 3장 1절에서는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이라고 부르면서 이 권면의 내용은 믿지 않는 자들이 아니라, 이미 복음을 영접한 이들을 위해 주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한번 예수를 믿어 다 된 것이 아니라, 믿은 이후에도 우리는 계속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목하여 그분을 보고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예수께서 누구신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요 대제사장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우리를 위해 오신 사도요 대제사장이십니다.

히브리서 3:1 /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브리서 3장 1절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을 사도이시고 또한 대제사장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도(ἀπόστολος)는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을 사도로 표현한 곳은 이곳이 유일합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예수님을 사도로 표현한 이유는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보내심을 받은 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도로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대사로서 하나님의 나라에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대제사장이십니다.

성경에서 대제사장은 사람의 죄를 속량 하는 제사를 드림으로써 하나님과 인간을 연결시키는 중재자의 역할을 합니다.  이런 점에서 제사장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다리를 놓는 자입니다.

이렇듯,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어 주사, 모든 죄를 속량 하시고 마침내 죄인이었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오신 그리스도

또 예수님은 누구이십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오신 그리스도이십니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을 선지자의 대표인 모세와 비교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3:3 / 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모세는 지어진 집이라고 한다면 예수님은 그 집을 지으신 창조주이십니다. 집주인이 지어진 집 보다 더욱 존귀함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또 예수님과 모세를 차이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히브리서 3:5 /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히브리서 3:6 /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둘 다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사역을 한 것은 동일하지만, 모세와 예수님과는 절대적인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이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선지자의 대표 격입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 앞에 크게 쓰임 받은 인물이었습니다. 따라서 당시 모세는 더할 나위 없이 유대교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모세조차도 사실은 예수님과 가히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크심을 알았던 세례요한은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27 /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

 

신발끈을 푸는 것은 종이 하는 담당하는 이었습니다. 그런데 요한이 주님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말은, 나는 주님 앞에 종이라고 불리는 것조차도 벅찬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세례요한은 주님의 크심을 정확히 알았던 것입니다.

성경에 하나님께 보내신 선지자가 여럿 있었습니다. 사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친히 사도로서 낮고 낮은 인간의 몸으로 오시고 대제사장으로서 십자가를 지셔서 우리의 죄를 속량하사 우리로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게 하셨다는 이 사실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기막힌 복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시험이 찾아올 때, 유혹이 찾아올 때 우리는 예수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주께서 누구이신지그분이 하신일을 깨닫고, 그분으로 하여금 죄인 되었던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고,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가 될 수 있었던 이 놀라운 사건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주신 하루 속에 우리의 사도요 대제사장이 되시는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여, 하늘에 속한 자로 믿음으로 승리하시는 복된 하루 보내시길 기도하며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