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약 QT/에베소서

에베소서 4장 25절~32절 (교회가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

by Updream 2024. 4. 3.

에베소서 4장 25절에서 32절을 통해 "교회가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주신 은혜 나눕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평강이 날마다 넘치길 기도합니다.

 

에베소서 4장 25절~32절
에베소서 4장 25절~32절

 

덕을 세우는 입술

에베소서 성도들을 향해 세상의 헛된 우상과 옛사람을 버리고 거룩한 새사람을 입으라고 권면한 바울은, 이제 삶의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첫 번째는 덕을 세우는 입술입니다.

에베소서 4:25 /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에베소서 4:29 /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믿음의 사람들은 입술을 어떻게 사용해야 합니까?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합니다.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사용합니다.

 

더러운 말이란 선한 말, 덕을 세우는 말과 대비되어 쓸 때 없는 말, 합당하지 않은 말, 남으로 하여금 근심케 하는 말을 가리킵니다.

 

한편 덕을 세우는 말은(오이코도멘)은 집을 의미하는 ‘오이코스’와 세우다는 의미의 ‘데모’ 합성어입니다.

 

각 사람의 말이 공동체를 세우고, 교회를 세우는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 줍니다.

 

말 끝마다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시험을 주는 사람이 있는가 반면에, 말을 통해 소망을 주고 용기를 주고 믿음을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의 말은 더러운 말이 아니라. 덕을 세우는 말이 되어 공동체를 더욱 아름답게 세워가야 하는 줄 믿습니다.

 

 

구제하는 손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두 번째는 구제하는 손입니다.

에베소서 4:28 /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도둑질은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을 말합니다. 도둑질을 하지 않는 것은 교회를 다니는 사람뿐만 아니라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도둑질을 하지 않기 위하여 자기 손으로 수고가 있어야 함이 마땅합니다. 수고해서 수확을 얻는 것은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된 삶의 질서입니다. 노동을 통해 삶의 영위해 나가는 것은 가치 있고 보람된 일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믿음의 사람들이 수고해서 노동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한 가지 더 밝히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입니다.

 

불법한 사람은 타인의 재물을 빼앗아 자신이 것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새사람이 된 성도는 자신의 재물을 팔아 가난한 자의 것이 되게 합니다.

 

가난한 자에 대한 선행은 구약성경에서부터 줄곧 강조해 온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성경은 나그네, 고아, 과부와 같은 사회적 약자를 외면하지 않고 돌볼 것을 대단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공동체를 보면 그들이 얼마나 이러한 성경의 가르침을 적극 실천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재산과 소유를 팔아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주며 구제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잠언 11:25 /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성도는 구제하기를 기뻐해야 합니다. 구제할 때에 이웃도 교회도 더욱 풍족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베푸는 용서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세 번째로 하나님의 마음으로 베푸는 용서입니다.

에베소서 4:32 /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좋은 일도 있지만 좋지 않은 일도 일어날 때가 많습니다. 서로 부딪히고 갈라집니다.

 

성령충만했던 바울과 바나바가 마가를 데라고 가는 문제로 인해서 서로 갈라졌는데, 이를 두고 성경은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섰다”(행 15:39)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사도행전 6장을 보면, 초대교회에서 구제 문제 때문에 헬라파 유대인들이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했다(행 6:1)라고 나옵니다.

 

이렇듯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라고 항상 아름다운 일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서로 용납하고 용서하는 일입니다.

 

베드로가 주님께 나와 어떤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을 용서해야 합니까? 일곱 번 정도 용서하면 됩니까?라고 묻습니다.

 

7은 성경에서 완전수로, 베드로는 7번 정도 용서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8:22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하라는 말씀은 490번만 용서하라는 것이 아니라 용서에는 끝이 없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얼마나 용서해 주셨을까요? 셀 수 없는 수많은 죄를 끝없이 용서해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우리도 형제, 자매의 잘못을 용서해 주는 것이 마땅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지키는 자가 주님의 제자임을 선언하셨습니다.

 

덕을 세우는 입술, 구제하는 손, 용서하는 마음을 통해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며, 교회이고 하나님의 나라임을 세상에 드러내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