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큐티 - 욥기 4장 12절~21절 말씀을 통해 "신비한 영적 체험"이라는 제목으로 주신 은혜 함께 나눕니다.
신비한 영적 체험 (엘리바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신비한 영적 체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병든 사람이 고침을 받는 경우도 있고, 귀신을 쫓아내는 경우도 있고, 신비한 환상을 보거나, 음성을 듣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영적 체험은 필수적이기보다는 필요에 따라 주실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영적 체험을 너무 추구한 나머지 신비주의에 빠져 이단에 넘어가기도 합니다. 또 어떤 이는 영적 체험을 경험하고 자신의 우월성을 주장하며 성도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 체험을 분별하며 때에 맞게 사용해야 합니다.
지난 장에서 엘리바스는 욥에 대하여 훈계하였습니다. 훈계의 내용은 남을 가르치고 교훈하던 네가 어찌하여 자신의 고난에는 지혜롭게 대처하지 못하는가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뿌린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말하면서, 지금 당하는 고난은 필시 죄로 인하 것임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에서 엘리바스는 자신의 주장이 정당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자신이 경험한 특별한 체험을 소개합니다.
욥기 4:12 / 어떤 말씀이 내게 가만히 이르고 그 가느다란 소리가 내 귀에 들렸었나니
욥기 4:13 / 사람이 깊이 잠들 즈음 내가 그 밤에 본 환상으로 말미암아 생각이 번거로울 때에
엘리바스는 신비한 체험을 합니다. 우선 12절 말씀을 보면 귀로는 어떤 말씀을 듣게 됩니다. 13절에서는 어떤 환상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15절에서는 그때에 한 영이 엘리바스 앞으로 지나가는 것을 그는 경험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어떤 신비한 체험을 하기도 합니다. 이상이 보이기도 하고, 신비한 말씀이 들리기도 합니다. 우연이라 이야기하기에는 너무나 기막힌 일들을 경험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체험해 대해서 생각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령한 체험을 거부해도 문제가 되고, 반대로 신령한 체험을 맹신하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는 말씀만 보면 된다고 하면서 말씀만 강조하는데.. 체험이 없는 신앙은 무미건조한 신앙생활에 빠질 우려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체험이 없으면 신앙이 쉽게 흔들리기도 합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왜 신앙생활에 활력이 없는 것일까요? 말씀은 많이 아는데 체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머리로는 아는데, 삶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신령한 체험을 맹신하는 것도 문제가 됩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말씀을 믿는다면 반드시 말씀에 대한 체험이 삶에 나타나야 하고, 삶에 체험되지 않는 신앙은 가짜라고 주장하기까지 합니다.
어떤 교회는 방언을 하지 못하면 구원받지 못한 것이다라고 가르치는 곳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신앙생활에 있어서 신비적 체험은 반드시 동반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르침은 신비주의로 빠질 수 있고 체험이 또 다른 우상이 될 수 있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과 체험이 균형 있는 건강한 신앙생활을 도모해야 합니다.
신앙과 체험의 사이의 건강한 신앙
엘리바스는 신비한 영적 체험 가운데 그가 듣게 된 것을 소개합니다.
욥기 4:17 / 사람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깨끗하겠느냐
욥기 4:18 / 하나님은 그의 종이라도 그대로 믿지 아니하시며 그의 천사라도 미련하다 하시나니
욥기 4:19 / 하물며 흙 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 앞에서라도 무너질 자이겠느냐
엘리바스는 하나님과 사람, 그리고 천사를 비교하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그 앞에서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무흠 하시고, 그런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의로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엘리바스가 말한 것 중에 틀린 것 하나 없습니다. 어떻게 하나님 보다 사람이 앞설 수 있으며, 하나님 보다 의로운 사람이 이 세상에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엘리바스는 신비한 영적 체험과 더불어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이야기를 통해, 지금 하나님 앞에 한탄하고 탄식하는 욥의 태도가 부당한 일임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의 말이 욥을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욥을 더욱 낙심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엘리바스는 본래 욥을 위로하려 했던 그 목표를 잃어버렸습니다. 비참한 상태에 있는 욥을 일으켜 세우기보다 오히려 더 주저앉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경험한 것을 근거로 하여, 자신이 욥보다 우위에 있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며 욥이 심판당한 것을 증명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신의 신비적 체험이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고 상대방을 정죄하는 데 사용될 수 있음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수많은 영적 체험을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에서는 셋째 하늘에까지 이끌려 갔던 신비한 영적 체험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꿈과 환상을 해석하는 능력을 받았지만 오로지 하나님의 뜻만을 전하였습니다. 요셉은 신비한 꿈을 해석하며 해석은 하나님께 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우리에게 더욱 큰 믿음을 주셨거나, 우리에게 신비한 영적 체험을 허락하셨다면 더 낮아지고 더 겸손하여 이웃을 섬기라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는 말씀과 체험에 대한 균형 있는 신앙을 추구하며, 하나님 안에서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만 높이는 우리의 신앙이 되기를 기도하며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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