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큐티 욥기 6장 1절에서 15절 말씀을 통해 "공감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나눕니다.
공감하지 못하는 엘리바스 - 나의 고통이 무개를 안다면
고통 중에 있던 욥을 위로하기 위하여 3명의 친구가 찾아옵니다. 그중 가장 연장자였던 엘리바스가 4장과 5장에 걸쳐서 욥에게 긴 충고와 권면을 하였습니다.
권면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고난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기에, 고난 받는 욥은 하나님께 대하여 한탄이나 원망보다는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욥은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욥은 6장과 7장을 통해서 엘리바스에 대한 충고에 반박합니다.
먼저 욥은 자신의 고난을 헤아릴 수 만 있다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욥기 6:1 /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욥기
욥기 6:2 / 나의 괴로움을 달아보며 나의 파멸을 저울 위에 모두 놓을 수 있다면
욥기 6:3 / 바다의 모래보다도 무거울 것이라 그러므로 나의 말이 경솔하였구나
욥은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이렇게 밝힙니다.
“나의 괴로움을 달아볼 수 있다면 나의 파멸을 저울 위에 모두 놓을 수만 있다면 바다의 모래보다 더 무거울 것입니다.”
바다의 모래는 무수히 많고 무겁습니다. 그 양을 다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닷가에 모래는 파도가 몰려올 때마다 계속 쌓이고 또 쌓이는 반복적인 과정이 있습니다.
욥의 고통은 마치 이와 같았습니다. 자신이 감당하기에 너무 무거웠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고난이었습니다. 이에 욥은 자신이 경솔해 보였다면 그것은 너무나 무거운 자신의 고통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속에는 친구 엘리바스에 대한 서운함을 은연중에 드러냅니다. "내 처지를 이해한다면 내가 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지를 알 텐데.. "라는 것입니다.
공감하지 못하는 엘리바스 - 어찌 울겠으냐
또한 욥은 힘들 때 고통을 호소하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라고 말합니다.
욥기 6:5 / 들나귀가 풀이 있으면 어찌 울겠으며 소가 꼴이 있으면 어찌 울겠느냐
들나귀나 소가 먹을 것이 없으면 본능적으로 울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배가 고픈 갓난아이는 본능적으로 울면서 엄마 젖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울부짖음을 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울부짖음은 힘들 때에 나타나는 당연한 반응입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지금 하나님 앞에 울며불며 탄식하고 고통을 호소하는 것은 자신의 형편에서 나타나는 당연한 반응이라고 말합니다.
끝으로 욥은 고통이 자신에게 어떠한 의미를 주는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욥기 6:6 / 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 닭의 알 흰자위가 맛이 있겠느냐
욥기 6:7 / 내 마음이 이런 것을 만지기도 싫어하나니 꺼리는 음식물 같이 여김이니라
모든 음식에는 소금이 적당히 들어가야 맛을 냅니다. 그런데 소금이 들어가지 않으면 밍밍하고 만족스러운 식사를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식사가 계속된다면 삶의 즐거움은 사라지고 맙니다.
지금 욥의 상황이 이렇다고 말합니다. 삶에 어떠한 기쁨이 없습니다. 희망을 줄 수 없는 공허함과 절망 속에 있습니다.
엘리바스는 욥을 위해 충고하지만 그 충고는 의미 없고 쓸 때 없는 충고였습니다. 차라리 듣기 싫은 말들 뿐입니다.
이에 욥은 자신의 속마음을 이렇게 털어놓습니다
공감하지 못하는 친구들 공감하시는 하나님
욥 6:14 / 낙심한 자가 비록 전능자를 경외하기를 저버릴지라도 그의 친구로부터 동정을 받느니라
욥 6:15 / 내 형제들은 개울과 같이 변덕스럽고 그들은 개울의 물살 같이 지나가누나
낙심한 자가 하나님을 저버릴지라도 그에게는 친구가 필요한데, 자신의 주변에는 친구가 없고 변덕스럽고 의미 없는 사람들뿐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고통 속에 있는 욥에 대하여 ‘공감이 전혀 없는 믿음의 사람’을 보게 됩니다. 바로 엘리바스입니다.
엘리바스는 욥의 친구로서 왔지만 그의 충고는 욥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를 더 고통스럽게 만들었고 그를 더 절망 속에 밀어 넣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엘리바스만 그런가요? 우리도 공감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조차도 이해할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누구를 위한다고 말하면서 오히려 그를 더 힘들게 할 때가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하여 출애굽기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출애굽기 3:7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7절에 말씀하십니다. “내가 고통을 보았다. 내가 부르짖음을 들었다.. 내가 너희의 무거운 마음을 알았다.”
요한복음 11:33 /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이 비통이 여기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고 말씀합니다.
이러한 구절들이 무엇을 보여 주십니까? 우리 하나님은 공감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저 하늘 위에 계신 하나님께서 낮고 낮은 나를 생각하신다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하늘 위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 33:3 /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공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소리를 들으시고, 우리의 간구에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구해야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지나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호소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오늘도 우리의 눈물을 보시고 우리의 소리에 귀 기울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헤아리시고 우리를 소리를 듣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심을 믿으며 나의 마음을 주께 쏟아 놓고 주님의 위로하심을 덧입는 복된 하루 보내시길 기도하며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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