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큐티 - 욥기 3장 11절에서 26절 말씀을 통해 "탄식을 하나님께 쏟아 놓기"라는 제목으로 주신 은혜 나눕니다.
탄식을 하나님께 쏟아 놓기 - 욥의 애통
오늘 본분의 말씀은 고통 속에 있던 욥이 자신의 생일 저주하고 있는 1-10절에 이어지는 말씀으로 자신의 출생에 대한 탄식에 대한 고백입니다.
그의 고백을 보건대, 그가 얼마나 극심한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는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고백을 통해 그가 느끼는 심리적 경험을 알게 됩니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종종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사건을 보게 됩니다. 그만큼 처한 현실이 고통스럽고 비통하다는 반증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살은 신자도 예외는 아닙니다. 신앙을 가져도 끝내 안타까운 결정을 하는 분들을 보게 됩니다.
자살한 신자가 천국을 갈 수 있느냐 없느냐는 이전부터 지금까지 계속되어 왔습니다. 그간 교회에서는 자살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여기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이전에 목사님들은 자살 한 이에게는 구원이 없다고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한 목회자는 대학생의 장례식장에서 그가 자살했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해 논란이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가르치고 설교한 이유에는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자살을 심히 경계하려는데 목적이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현대에 들어와서는 자살을 사회적 질병의 하나로 보고 교회에서도 자살에 대한 신앙적 책임을 묻기보다는 해당자 및 해당 가족에 대한 공감과 위로로 접근하려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욥도, 자살을 생각하는 게 무리가 아닐 만큼, 그의 삶이 비참한 시련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주신 재물을 하루아침에 날리게 되었습니다. 주신 자녀도 모두 잃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건강도 잃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쯤 되면 모든 것이 끝났다. 아무 소망 없다. 차리라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고 있었던 자신에게 지금 일어나는 일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심각한 신앙적 도전이 찾아왔습니다.
하나님께 범죄하고 죄를 지며 살았으면 ‘벌’이라고 생각이나 할 수 있을 텐데, 하나님을 누구보다도 신실하게 섬겨왔던 그에게 있어 이러한 상황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신앙을 포기하는 경우가 3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한 가지가 바로 이러한 실존적 문제에 봉착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 말입니다. 욥의 상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한 현실적 충격뿐만 아니라 풀리지 않은 실존적 문제와 신앙적 갈등이 그를 심각하게 괴롭혔습니다.
탄식을 하나님께 쏟아 놓기 - 어찌하여 생명을 주셨는고
그리고 그는 이러한 자신의 삶에 대해서 하나님께 이렇게 토로합니다.
욥기 3:20 / 어찌하여 고난당하는 자에게 빛을 주셨으며 마음이 아픈 자에게 생명을 주셨는고
20절에 고난당하는 자와 마음이 아픈 자는 욥 자신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빛은 이어 나오는 생명을 가리킵니다. 왜 나에게 생명을 주시는가? 왜 나를 살려 두시는가? 차라리 나를 데려가시면 좋지 않겠는가 라는 고백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고백이 또 나옵니다..
욥기 3:23 / 하나님에게 둘러 싸여 길이 아득한 사람에게 어찌하여 빛을 주셨는고
길이 아득한 사람 역시 욥 자신을 가리키고 빛은 생명을 말합니다. 길이 아득하다는 것은 희미하고 보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쉽게 이야기해 살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살길이 막막한 나에게 어찌하여 생명을 주시는가, 차라리 나를 죽이시지 왜 나를 살려두시는가?라는 고백입니다.
욥과 같이 막막한 처지가 된다면 이렇게 고백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도전은 그의 고백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여전히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20절에서 아픈 자에게 생명을 주셨는고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생명을 주시는 자의 주체가 누구이십니까?
23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득한 사람에게 빛을 주시는 자의 주체가 누구이십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욥은 말할 수 없는 고통 중에 있었으나 생명의 주권이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께 있으며 자신의 호흡이 주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이러한 그의 믿음은 12장에서도 확인됩니다.
욥기 12:10 / 모든 생물의 생명과 모든 사람의 육신의 목숨이 다 그의 손에 있느니라
"모든 사람의 육신의 목숨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 욥의 목숨도 하나님께 있습니다."라는 것입니다.
탄식을 하나님께 쏟아 놓기 - 탄식을 들으시는 주
3장의 욥의 고백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에서 비롯된 고백이 아니라 너무 극심한 고통 가운데, 보인 하나님께 대한 탄식임을 보게 됩니다. 다시 말해 욥은 극심한 고통을 경험한 나머지 죽기를 바라고 있으나, 그 깊은 내면에는 자신의 생명을 붙들고 계신 하나님께 대하여 '탄식'을 쏟아 놓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죽기만큼의 고통에 직면할 때가 있습니다. 가슴이 메어지고 찢어지는 것 같은 아픔이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 답은 ‘우리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도 여전히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잡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시편에는 희로애락과 같은 다양한 감정들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시편의 저자인 다윗이라고 날마다 기뻐한 것은 아닙니다. 그도 탄식했고 그도 절망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편이 우리에게 아름다운 고백이 되고 도전이 되는 이유는, 시편 기자들이 탄식을 하나님께 쏟아 놓지만 결국 하나님 안에서 소망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5:13 /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노래도 들으시지만 우리의 탄식도 들으십니다.
어떠한 어려움 중에도 우리의 시선은 늘 하나님께 고정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소망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탄식을 하나님께 쏟아 놓아야 합니다.
우리의 탄식까지도 친히 들으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의지하며 날마다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간절히 기도하며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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