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큐티 사도행전 7장 1절~16절을 말씀을 가지고 '기억과 망각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나눕니다.
오늘 7장에서 1절~50절까지를 흔히 스데반의 설교라도 부릅니다.
스데반은 이스라엘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아브라함 때부터 시작하여서 솔로몬 시대까지의 역사까지의 긴 역사를 짧게 간추려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를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스데반은 교회에 초대받아 설교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길거리 전도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공회 앞에서 신문과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자신을 고소하는 이들에 대하여 자신을 변호하고, 무죄를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디에도 자기변호나, 자기 무죄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전혀 무관해 보이는 ‘구약의 역사’를 언급합니다.
오늘 본장에서 스데반이 이야기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아브라함의 이야기입니다.
사도행전 7:2 /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스데반은 아브라함의 이야기로 말을 시작합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아브람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2가지를 약속하셨습니다.
첫째는 땅입니다. 내가 내게 보여 줄 땅을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둘째는 자손입니다. 하늘의 뭇별의 셀 수 없을 만큼 후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것을 요약하여 스데반은 5절과 같이 고백합니다.
사도행전 7:5 / 그러나 여기서 발 붙일 만한 땅도 유업으로 주지 아니하시고 다만 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그와 그의 후손에게 소유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며
땅도 주시고 자손도 주신다니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그런데 사실 이것은 아브라함 입장에서 보면 아직 실현되지 않은 ‘약속’ 일뿐입니다 ‘약속’ 일뿐입니다. 당시에 아브람은 땅도 없고 자식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이 땅을 얻고, 자식을 얻어 민족을 이룬다는 것은 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증언대로 아브라함은 갈바를 알지 못하는 가운데서 믿음으로 나아갔고, 결국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땅과 후손을 주셔서 민족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고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창세기 12:2 /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과 후손은 단순히 세상적 번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오실 메시아와 그리고 그 메시아를 통해 구원받을 수많은 백성들을 가리킵니다.
둘째, 요셉의 이야기입니다.
스데반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두 번째는 요셉의 이야기입니다.
사도행전 7:9 /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
요셉은 야곱의 열두 아들 중 하나로, 형들에 의해 애굽에 팔리는 불행을 겪은 인물입니다. 애굽으로 팔려 간 요셉이나, 요셉을 판 형제들이나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고 또 그로 인해 야곱의 가족이 애굽으로 들어와 살게 될 것이라는 것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그는 마침내 애굽의 총리의 자라에 올랐습니다. 뿐만 아니라 극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 그를 통하여 아버지 야곱과 형들을 애굽으로 불러 가족들을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예수님의 이야기를 떠 올리게 만듭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도 예수님을 시기하였습니다. 그래서 박해하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그 박해받으신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자신을 죽이려 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왜!! 스데반은 아브라함의 이야기 또 요셉의 이야기를 꺼내 든 것일까요?
사실 이 두 이야기는 유대인들이라면 너무나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특히 공회에 있는 사람들은 구약과 율법에 정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안에 담긴 메시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과 구원의 계획’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말씀의 언약을 기억하지 못하고 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두 가지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다음의 두 가지는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 죄인이었던 우리에게 먼저 찾아오신 하나님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아브라함을 찾으셨습니다. 죄인 된 우리가 구원의 자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우리에게 먼저 다가오신 하나님 때문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이 행하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 열렸습니다. 예수님 이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유일한 구원의 길 되시는 예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무엇을 하셨는지를 망각하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말씀에 대한 기억은 은혜를 풍성하게 만들지만, 말씀에 대한 망각은 죄악을 풍성하게 만듭니다.
죄인 된 내가 어떻게 구원을 받게 되었는지,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주님께서 무엇을 하셨는지 우리가 말씀을 기억한다면, 날마다의 삶 속에 불평불만이 아니라, 은혜와 감사가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아니시면 여전히 죄악을 행할 죄인이 우리 자신임을 기억하면서 날마다 은혜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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